작가 서혜를 만나다
그녀는 이제야 1막 1장

원래 글쟁이와 그림쟁이는 본질적으로 차별화된다. 글쟁이는 그림쟁이를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라고 놀리고, 그림쟁이는 글쟁이를 계산적이고 우울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글과 그림은 물과 기름처럼 하나될 수 없는 관계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 서혜의 작품 속에서 그림과 글자는 본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살을 섞는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야 할지, 감상해야 할지 잘 몰라도 상관없다. 어느 쪽으로 봐도 서혜의 작품은 빛난다.

일러스트레이터, 타이포그래퍼, 인터랙티브미디어 아티스트. 작가 서혜를 부르는 다양한 이름들이다. 그러나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바 프로그래머였다.

스물 아홉이 될 때까지 그녀에게 세상은 텅 비어 있었다.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어려운 시험을 거쳐 일본 회사에 입사, 자바 프로그래머로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프로그래머로서의 일상은 그녀를 매일매일 지치게 했다.

서혜의 사전에 하나의 추상으로만 존재하던 ‘디자인’이란 단어가 그녀의 삶에 들어온 것은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터닝포인트를 찾기엔 늦은 나이라고 단정짓고, 주저앉아 버리는 나이였다.

“어릴 때부터 디자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어요”라며 운을 뗀 그녀는 “보통 책을 읽으면 한 권 읽는데 며칠씩 걸리는데, 디자인 책은 하루면 다 읽곤 했죠”라고 덧붙였다. 

일본 본사에서 한국지사를 설립하면서, 한국 지사 대표로 파견오게 되자, 그녀는 이제부터라도 디자인을 제대로 공부해 보자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디자인 공부를 시작한다.

아이덴티티를 찾다
‘서혜’하면 떠오르는 작품인 ‘the alphabet’. 국내에서는 비슷한 작가를 볼 수 없는 서혜만의 독특한 타이포그래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막연히 일본에서 열리는 디자인 페스타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참여 신청부터 해놓고, 어떤 스타일로 서혜의 아이덴티티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러다 일단 전시장에 걸릴 제 이름부터 예쁘게 써 보자는 생각으로 제 이니셜을 그렸어요. 그러다가 제 스타일을 발견하게 된 거죠. 그래서 ‘코리아 디자인 위크 2009’에서는 알파벳 17자를 완성해 전시했습니다.”





‘the alphabet’ 외에도 2009년 작업한 작품인 ‘夢’은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도 소개됐으며, 그녀의 작품인 ‘DAF(Design & Art Festival) 2010’의 CI는 반응이 좋아, 올해 4월에 열리는 ‘DAF 2011’에서도 그대로 사용될 예정이다. 처음 자신의 이름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했던 작은 디자인이 정말 그녀의 이름을 아름답게 빛나게 한 것.

그러나 그녀를 타이포그래퍼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높이 인정받고 있으며, 실크스크린으로 만든 그래픽 거울 작품 역시 서혜를 설명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제 패턴을 제품에 반영하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거울에서 벗어나 다른 제품에 접목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자신의 일러스트가 녹아든 디자인 제품까지 제작하고 싶어하니, 그녀를 어느 한 마디 말로 정의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오감으로 저와 이야기 나누실래요?
지난해 ‘DAF’와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는 좀 더 특별한 작품을 선보였다. 인터랙티브미디어아트워크인 ‘DESIGN by yourself’. 5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준비했으며, 그 아이디어를 얻고, 주제를 정하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그만큼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단다.

작품은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관람객이 직접 마음에 드는 패턴과 컬러를 고른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에 그림을 그리거나 이름을 쓰거나 혹은 자신의 얼굴 윤곽 사진을 찍으면, 이를 패턴으로 표현하고, 마지막으로 엽서로 프린트해 소장할 수 있게 한 것. 이를 통해 시각만을 활용한 일방적 작품 감상에서 벗어나, 관객들이 서혜의 스타일을 직접 체험해 보고, 관객과 작가의 공동작업으로 작품을 완성해가는 창작의 경험을 제공했다.

관객의 시각과 촉각을 자극하며, 즐거운 디자인 경험을 제공한 그녀의 작품은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인터랙티브가 돋보인 작품 ‘DESIGN by yourself’는 2월 안으로 안드로이드와 갤럭시탭 어플로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아이폰 OS에 맞춰 개발도 준비하고 있다. 조슈아 데이비스(Joshua Davis)가 항상 새로운 신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자신만의 스타일과 접목하는 모습을 볼 때면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는 그녀. 하지도 그녀도 이미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있진 않을까?





늦지 않았나요?
그녀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중고등학교 때부터 디자인에 뜻을 두고 공부해온 경쟁자 혹은 동료를 생각하면 그녀의 선택은 의아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단다. ‘좀 늦지 않았냐고, 조바심 나지 않느냐’는 우문에, “어릴 적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집안 사정상 디자인을 공부할 생각은 꿈도 못 꿨죠. 만약 그때 제가 고집을 피워 디자인을 시작했다면, 아마 중간에 포기했을 거에요. 그리고 지금의 저도 없겠죠. 하지만 지금 저는 그 동안 제가 직장생활을 하며 차곡차곡 모아놓은 돈을 기반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껏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죠”라며 현답한다.

작가 서혜. 그녀의 디자인은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반면, 그녀는 굉장히 많은 능력과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워드, 오라클, 자바 스크립트 등 이전에 했던 일과 관련한 자격증이 많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공부해 취득한 디자인 관련 자격증 등 어림잡아 12개쯤 되는 것 같단다. 게다가 시험으로 측정할 수 없는 능력도 뛰어나다. 체리필터나 이지아의 앨범 재킷 디자인도 그녀의 작품이라고 하니, 음악을 해석해 비주얼로 표현하는 공감각적 능력 역시 뛰어난 모양이다. 엉뚱하게도 일본 서적을 번역한 것도 여러 권이란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분야의 노하우가 그녀의 작품에는 어떻게 나타날까?

“이번에 만든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인 ‘DESIGN by yourself’에서는 인터랙션이 중요합니다. 작품을 위해 플래시를 새로 배우긴 했지만, 이전에 했던 일들이 작품 제작에 큰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일까? 어떤 이들은 그녀의 작품들이 하나의 ‘회로’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치밀하게 계산돼 있는 듯한 서혜의 스타일. 이것이야말로 작가 서혜만의 아이덴티티가 아닐까?



2011년 서혜를 입다
“얼마 전에 일본에 가서 다른 제품을 만들 기계를 사 왔어요. 이제 다른 제품으로도 인사드릴게요. 2월 안으로 서혜의 쇼핑몰도 오픈해요.” 이제 서혜가 브랜드 이름이 되는 것. 일본의 우에하라료스케의 상품에 마음을 많이 빼앗겨 봤다는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디자인 상품을 제작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브랜드 ‘서혜’를 하라 켄야의 ‘무인양품’ 같은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제 목표죠.” 일단 4월 22일부터 진행될 예정인 Design&Art Fair 2011에서 서혜 브랜드의 여러 제품을 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그녀의 꿈은 이제야 시작단계다. 제품 생산을 통한 쇼핑몰 사업 뿐 아니라 레지던스 프로그램 도전도 그녀의 목표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전 세계에서 시행되는 것으로 실력있는 디자이너를 뽑아서 일정 기간동안 국가적 지원을 제공한다. 그녀의 목표는 뉴욕 레지던스 참가다.

세상을 향하다
“이번에 인터랙티브 작품의 반응이 좋아서, 이를 더 활용해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자인 경험을 주고 싶어요”라며 운을 뗀 그녀는 거창한 꿈을 소박하고 수줍게 밝혔다. “이번에는 시각과 촉각만을 활용했는데요,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오감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거죠. 오랜 기간 구상해야겠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미 웰던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있기도 하다. 디자이너의 모임인 웰던 프로젝트는 원래 각기 자신의 재능기부로,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식수 펌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지난해 아프리카 식수펌프 1호를 만든 후에, 내년 중순 학교 건립을 목표로 모금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우연히 웰던 프로젝트의 조동희 대장을 알게 되면서 참여하게 됐는데요, 지난해 아름다운 텀블러 프로젝트 때부터 참여했죠. 지난 전시회에서 엽서제작으로 번 15만 원의 수익금도 모두 기부했습니다.”

그녀와 인터뷰하는 내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많이 했다. 앞으로 너무나 해야할 일이 많고 계획한 것이 많은 그녀이기에, 여기서 그녀를 한 마디로 단정짓고 기사를 써도 될까라는 고민….
그러나 디자이너가 되기를 원하지만, ‘늦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그녀의 이야기는 먼저 풀어놓기로 결정했다. 자신을 규정짓던 것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서혜 작가와 같은 확신과 애정만 있다면 늦은 시기란 없지 않을까. 물론 하루 15시간을 작업에 집중하는 그녀의 열정도 잊어서는 안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세계를 파괴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새가 알을 깨고 나오면 신에게로 날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새는 신이 된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서혜 작가의 모습과 꿈이 아름다운 건, 누군가의 권유에서나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간 것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대답으로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당장 시작하세요. 일을 해야 하고, 시험을 봐야 하고 어쩌고 하는 등의 핑계를 대지 말고, 그냥 시작하세요. 하고 싶을 때가 최적의 시기입니다.”

서혜
Blog http://seohye.pe.kr
Homepage http://ilovemydesign.co.kr
Twitter http://twitter.com/designer_seohye

Exhibition
2008.11 Tokyo design Festa, Odaiba, Japan
2008.11 Design Festa gallery, Harazuku, Japan
2009.05 Korea Design Week 2009 ,seoul station, Korea
2009.08 Hangul Zuryon exhibition, Bukchon culture center, Seoul, Korea
2009.10 Hangul Zuryon exhibition, Gallery Modium, Seoul, Korea
2009.10 Seoul Designer's Dream, Seoul Design Olympic, Seoul, Korea
2009.10 Hangul Zuryon exhibition, Seoul Design Olympic, Seoul, Korea
2009.10 olleh KT ART,Kumho museum, Seoul, Korea
2009.10 Home & Table Deco Fair 2009, COEX, Seoul, Korea
2009.11 Seongnam Design Festival, Seongnam cityhall, Korea
2009.12 Seoul Design Festival, COEX, Seoul, Korea
2009.12 Hana no Nukumori, Beautiful Store, Seoul, Korea
2010.11 DAF(Design&Art Festival), Seoul Arts Center, Seoul, Kore
2010.12 Seoul Design Festival, COEX, Seoul, Korea

Press
2009.02 A winning piece of typo part, Korea Illustration society
2009.06 A art textbook of high school of 2011, typo part ,Mijin corporation
2009.06 monthly magazine Computer Art(CA)
2009.06 interview monthly magazine design Jungle
2009.06 interview online magazine NEWWEPPICK
2009.07 interview http://www.fontclub.co.kr
2009.09 interview http://ejungle.co.kr
2009.10 online Jungle academy magazine interview
2009.11 Seoul Desingner’s dream book
2009.11 monthly magazine Jungle interview
2009.11 monthly magazine Cosmopolitan
2009.12 cable TV TBS ‘I♡design’ interview
2010.01 online magazine newwebpick korea artist interview
2010.06 monthly online magazine Jungle interview
2010.07 Monthly magazine DECO interview
2010.10 Suwon University magazine interview
2010.11 online Jungle magazine interview
2011.01 GRAFORIO interview

Individual Work
2009.02 A winning piece of typo part, Korea Illustration society
2009.06 A art textbook of high school of 2011, typo part ,Mijin corporation
2009.06 Window painting of Waffle&coffee cafe
2009.08 CD cover design of collaboration drama of korea&japan
2009.09 CD cover design of korea singers
2009.11 Tumblers design of fair trade
2009.12 Window painting of Chocolate PC cafe
2009.12 Window painting & Interior of old book store ‘The beautiful Store’
2010.01 Design Tumbler for volunteer



하이테크-C 펜
그녀의 일러스트와 타이포그래피는 항상 하얀색 종이 위에 까만색 펜으로만 그려졌다. 펜도 검정색 하이테크-C 0.4mm만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제 좀 더 많은 도구로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다. 그런데아직 하이테크-C만한 녀석을 만나지 못했단다. 긴긴 인터뷰 내내 시종 활발한 그녀의 성격과는 달리, 예술에 있어서는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모양이다.

로리
9살 난 그녀의 강아지다. 미니어처 종의 요크셔테리어인데,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 하건 항상 조용히 그녀 곁을 지킨다. 특히 새벽에 주로 작업을 하는 그녀 옆에서 졸린 눈을 끔벅끔벅하며 그녀의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로리를 보면 힘이 불끈 솟는다고…

추천 사이트
FFFFOUND!
(http://ffffound.com) _ 한번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사이트. 작업적 영감을 가장 많이 얻는다.
FWA(http://thefwa.com) _ 영상 쪽 아이디어를 많이 얻곤 한다. 예전에 비해 메뉴가 불편하게 바뀌어 아쉽다.
Kuler(http://kuler.adobe.com) _ 색상 매치를 볼 때 자주 들른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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