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게 많은 홍대지만, 그런 홍대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박물관이 있다. 이름도 독특한 뽈랄라 수집관.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홍대입구역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옛날만화 같은 노란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작은 간판이 이끄는 대로, 마녀의 옷장을 여는 남매들처럼 흥분과 기대를 한껏 안고, 뽈랄라 수집관의 계단을 내려가보자. 그곳엔 분명 나니아보다 더 멋진 세계가 기다릴테니.



짝퉁 아티스트의 계산 착오 홍대 정착기
홍대의 명물 뽈랄라 수집관 지킴이 현태준 관장의 직업은 굉장히 많다. 만화가, 수필가, 일러스트레이터, 장난감 수집가, 뽈랄라 수집관 관장, 뽈랄라 상회 대표, 그리고 현대미술 아리스트까지. 
뭐라고 부르냐는 말에, 그는 대뜸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한다. 딱이다. 원빈의 ‘아저씨’가 나오기 이전에, 우리가 생각하던 일반적인 아저씨의 모습. 그게 바로 현태준 관장이다. 182cm의 키에 100Kg에 육박하는 육중한 체구, 뱅글뱅글 돌아가는 커다란 뿔테 안경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그러나 그 너머 숨길 수 없는 그의 표정은 한창 장난을 치고 도망나온 개구쟁이의 그것과 비슷했다.

자신을 소개하는 ‘현대 미술 아리스트’라는 말만 봐도 그렇다. “아리스트는 ‘짝퉁 아티스트’를 일컫는 말이죠”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그런데 그것 아시나? 진짜 ‘짝퉁’은 스스로를 ‘짝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뽈랄라 수집관을 열기 전에 그는 이미 헤이리 ‘20세기 소년소녀관’에서 그의 콜렉션을 전시해왔다. 그러면서 일러스트 작업, 책 집필 등 작품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홍대에 들어올 생각을 한 건 재작년이다. 

“작업실을 홍대로 옮기고 작은 전시실을 같이 만들면, 입장수입으로 작업실 임대료 정도는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크나큰 오산이었죠.” 그의 말처럼 일단 손을 대니, 일은 눈덩이처럼 커져 꼬박 1년을 전시관 만들기에 매달려야 했다. 

“입장수익을 노리겠다는 제 꿈은 말도 안 되는 허상이었죠. 준비기간 임대료는 물론, 전시를 위해 새롭게 사들인 물건이나 시설 투자비까지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들어갔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4월 홍대 뽈랄라 수집관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홍대 문화를 형성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지금은 홍대가 많이 상업화돼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홍대는 새로운 문화나 시도에 대해 열려 있어요. 그래서 저 역시 더 많은 재밌는 일을 계획하고 있답니다.“



본능해 충실해 재밌게 살기
‘뽈랄라’는 ‘포르노’와 ‘랄랄라’의 합성어. 이름처럼 뽈랄라 수집관은 ‘본능에 충실해 재밌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줄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요즘에야 인터넷으로 쉽게 접하지만, 옛날에는 야한 것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이따금 친구네 집이 비면, 거기 모여 부모님이 숨겨놓은 야한 비디오를 볼 때가 있는데요, 그때의 그 재밌고 유쾌한 기분을 이름에 담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뽈랄라 수집관에 낯뜨거운 전시물이 있으리라고 오해하진 말기를. 그만큼 짜릿하고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는 놀이터란 의미다. 

물론 단순히 재미만으로 하기에는 남모를 고초도 많다. 입장료 2,000원으로는 임대료조차 충당이 안 되며, 이 분야는 문화/예술 지원금 대상에서조차 제외된다고. 그렇다고 입장료를 올릴 생각도 없다. 학생들이 쉽게 들어와 놀다 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가면 조상들의 유물을 볼 수 있죠. 그런데 대부분 왕이나 귀족들이 쓰던 물건입니다. 그러나 하찮고 사소한 물건도 남겨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아주 비싸고 좋은 것보다는 매일매일 사소하고 하찮은 물건들을 주로 사용하고 있잖아요. 결국 생활에 대한 기록으로는 이런 것들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이죠. 사실 이런 과거의 유물들을 모으는 일은 국가에서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작업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안타까워요.”

또 다른 직업, 작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는 꽤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기도 하다. 대표작품으로는 <오늘도 뽈랄라>,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여행기>, <현태준의 대만여행기>, <뿌지직 행진곡>, <뽈랄라 대행진>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책들을 딱히 어느 한 카테고리로 분류하기가 모호하다. 한 권의 책 안에 만화도 있고, 일기나 수필도 있고, 포토에세이도 있으며, 인터뷰 기사까지 있다. 현태준 작가 역시 자신의 책은 ‘화장실에서 가볍게 보고 웃으면 되는 책’이라고 말한다. 

비록 여러 권의 책을 냈지만 그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흥미를 이기지 못하는 법. 그는 올 가을 전시회를 계획하고 틈틈히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뽈랄라에서는 시끄럽게 관람하세요
뽈랄라 수집관에서는 원칙적으로 사진을 찍는 게 금지되는데, 그 이유가 흐뭇하다. “사진을 찍느라고 사람들이 전시물을 열심히 보지 않거든요. 그게 안타까워요.” 

그렇다면 제일 싫은 관객은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일까? “아니에요. 사진 몇 컷 정도는 그냥 찍을 수 있게 놔둡니다. 젤 난처한 관객은 전시품을 팔라고 조르는 사람이죠.”

박물관에서 우리는 당연히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에티켓으로 여긴다. 그러나 뽈랄라 수집관은 예외다. “큰 소리로 떠들면서 재밌다고 깔깔거리고 옛날 물건에 얽힌 얘기 시시콜콜 쏟아내는 관객들이 좋습니다. 원래 여기는 재미를 주기 위한 공간인데 재미있게 봐주니 행복하죠.” 

현태준 관장이야말로, 삭막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웃음과 행복을 찾아주는 진정한 개그맨이 아닐까? “눈치보지 말고 재미있게 살자”는 그의 말처럼,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도 멈추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현태준 관장. 돈을 많이 벌어서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해 보겠다는 그를 보며, 아마 내년에는 또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를 다시 인터뷰하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뽈랄라 옥션 http://www.pol-auction.com/
뽈랄라 상회 http://www.pollalla.com/
뽈랄라 수집관 카페 http://cafe.naver.com/pollala/
현태준의 뿌지지직(현태준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sinisig
현태준 아저씨 공식 홈페이지 http://www.hyeon.net/



뽈랄라 수집관
뽈랄라 수집관에 들어서면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계시던 현태준 관장님이 반겨준다. 그리고 어린 시절 손가락 마디가빨개지도록 가위를 꼭 쥐고, 정성스레 오려나가던 종이인형 한 장을 건네준다. 이게 바로 시간여행을 위한 기차표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뽈랄라 수집관에서는 주인장이 오랜 시간, 전 세계를 돌며 발품 팔아 모은 다양한 장난감들을 볼 수 있으며, 일본 등 해외에서 직수입한 장남감을 국내 최저가로 살 수도 있다. 뽈랄라 수집관에서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엿보고, 부모님에게도 자신과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10대를 만나거나, 어렴풋한 기억을 끄집어내며 재잘재잘 많은 이야깃거리를 쏟아내는 20~30대의 이야기를 엿듣거나, 옛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 살짝 그리움의 눈물을 찔끔 흘리는 40~50대를 봐도 낯설어하지 말기 바란다. 뽈랄라 수집관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주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5-4번지 지하 102호
전화 02-3143-3392
문 여는 시간(봄) 화/수/목/일 PM 1:00 ~ PM 8:00, 금/토 PM 1:00 ~ 9:00
입장료 2,000원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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