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안드로이드의 아틀리에
내면의 목소리에 대한 가장 성실한 대답

그가 먼지 앉은 태블릿을 꺼내들고 돌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영상 작업만 하던 그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거듭하다 홀연히 내린 생각 때문이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질문에 대한 답변.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스스로에게 정직하다. 


어느 날 그라폴리오에 등장한 눈에 띄는 아트웍 몇 작품.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가진 한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안정인. 안로이드(Andrawid)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는 그의 작품에선 단호하고 오롯한 열망과 재능이 보였다.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
논현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포토 스튜디오나 인디밴드 공연 클럽에 들어온 것 같다는 착각을 받았다. 불그스름한 조명과 군데군데 자리한 꽤 그럴싸한 악기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자전거와 커다란 스피커까지.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일러스트 작업실은 영상제작 기획사의 한 구석을 나눠 쓰고 있었다. 그림보다 음악이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 그의 작업 공간에서 오는 이런 이질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그의 성향과 어우러져 작품에 독특한 분위기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가 영상제작소에 안착한 것은 우연은 아니다.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하며, 영상 편집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가진 그는 대학선배의 러브콜에 응했다. 그리고 선배의 스튜디오에서 영상 편집을 도와주며, 일이 없을 때면 자신의 그림을 그리곤 한다.
전체적인 면적은 넓지만, 그에게 할애된 공간은 작은 책상이 전부였다. 게다가 가진 장비도 덜렁 태블릿 하나뿐. 그러나 그 공간이 결코 좁아보이지 않았던 건, 작업실 곳곳에 자리잡은 각종 영상장비와 악기 등 모든 것들이 그의 작품 속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한 장의 그림이지만 그의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것도 음악이 일으키는 진폭과 진동이 그의 작품에서 무의식적인 자각을 일으키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다른 그림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데 반해, 그가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도 이런 주변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보고, 듣고, 만지고 하는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도 ‘영화’에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죠. 영화와 영상제작에 대한 관심에서 미대진학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만큼, 제가 하는 대부분의 생각은 영상을 소스로 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머릿속으로 어떤 영상이나 이미지를 상상하죠. 그리고 그 가운데 창작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경우도 간간이 있고요. “

일러스트를 위한 내려놓기
지난해 말 갑자기 시작한 일러스트지만, 여기에 전념하기로 다짐한 그는 일러스트 외의 모든 것을 내려놨다. 아니, 벗어놨다고 해야 맞겠다.
“막연히 그림을 다시 그려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수년 전에 사 둔 태블릿을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특별한 계기나 애정 없이 시작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언제부턴가 그림 한 장 한 장에 웃기도 하고 담배처럼 씁쓸한 맛도 느끼며 매력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지금은 그림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할 만큼 그림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다.”
물론, 영상 편집일에서도 손을 뗄 수는 없는 법. 직업상의 영상작업과 일러스트 작업을 병행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부족한 편이다. 눈 떠서 감을 때까지 그림만 보고 그림만 생각한다.

그에게 일러스트란 무엇인가 물었다.
“제게 일러스트란 ‘이야기 상자’에요. 어릴 적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할머니처럼, 저는 그림으로 세상의 재미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해 주고 싶거든요.”
그리고 그가 미처 말하지 않은 한 가지를 더하자면 그에게 ‘일러스트’란 언어다.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세상 모든 이들과 소통할 수는 없는 법. 일러스트를 통해 그는 삭막한 세상에 휴머니즘과 유머가 담긴 훈훈한 말을 건네다.

웃음으로 말 걸기
안드로이드는 처음에는 축구 스타들을 그리더니, 지금은 영역을 넓혀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에도 일맥상통하는 흐름이 있으니, 바로 ‘웃음 코드’다. 왜 모델의 영역을 바꿨냐는 우문에 그는 “일러스트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가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다른 작품을 보여주지 못한 것 뿐”이라고 운을 뗐다. “스포츠일러스트 분야만 하는 것으로 오해 안 했으면 좋겠어요. 현재는 영화 패러디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이미지를 엉뚱하게 표현해보는 그림들을 진행하고 있어요. 이 역시 당장 진행하고 있는 몇 가지 그림 얘기이고 사실 특별한 취향도,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도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당분간은 웃음을 주는 그림 위주로 작업할 생각입니다. 안드로이드의 수백, 수천 만 가지의 소재 중 일부분이 일단 선보인 것 정도로 생각해주세요”라고 현답했다.
안정인 일러스트레이터의 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렇겠지만, 그림을 봤을 때 ‘이건 안드로이드 작품일거야’하고 딱 떠올릴 수 있는, 저만의 개성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피식하고 웃든 박장대소를 하든 즐거운 웃음을 주고 싶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홀릭
그는 요즘 뭔가에 쫓기듯 그림만 생각하고 그림만 그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림만 생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포토샵, 페인터,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작업한다. 초기에 축구 선수를 주 모델로 삼은 것도 자신의 작업 스타일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쉽게 접할 수 있고 다양한 소스가 있는 인물과 관련된 일러스트부터 차근차근 그려나가다 보면작은 변화가 쌓이고, 결국에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현재의 결과물이 쌓여왔습니다. 아마도 근래에 다른 형태의 작업물들을 많이 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 ‘Cowboy’와 ‘camouflage‘ 두 작품은 의미가 깊다.
“’Cowboy’는 요즘 그리기 시작한 ‘웃음을 주는 그림’의 프로토타입이 된 그림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시도해볼 수 있는 소재들 중 한 부분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 주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camouflage’ 역시, 우연히 만들어진 캐릭터지만 연결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죠.”
그의 작업 스타일도 자유분방하긴 마찬가지다. 무심결에 낙서하다가 갑자기 뭔가를 그려나가기도 하고, 무언가 계획을 세워 시작했지만 정작 배는 산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많단다.
“지금 바탕화면을 보니 그리다 만 파일이 스무 개쯤 되네요. 그런 식입니다. 한 두 시간에 끝날 때도 있고, 일주일 이상 걸릴 때도 있죠. 좀 늘어지게 작업하는 편이에요. 이런 버릇이 전공(디자인)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따금 탄력을 받으면 한꺼번에 여러 개의 완성된 작업이 나오기도 하죠.”

Andrawid
그의 작가명인 ‘안드로이드’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아는 안드로이드(Android)와 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단순하게 Draw라는 단어에 제 성인 An을 붙이니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렇게 짓고 나니, 마지막에 붙은 id가 프로이트의 용어인 이드(id)로도 해석되더군요.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 같지 않나요?(웃음)”
안드로이드(Android)는 구글의 모바일 OS를 일컫는 명칭 외에 다른 의미도 있다. 그리스어로 ‘인간을 닮은 것’이라는 뜻의 이 용어는 우수한 로봇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다. 아직은 안드로이드를 검색하면 휴대폰 얘기밖에 안 나온다고 귀엽게 투덜대는 그이지만, 곧, 안드로이드(Andrawid)가 안드로이드(Android)와 검색 순위를 다툴 날이 올 것 같다.
인터뷰를 앞둔 기자라면 으레히 포털 검색엔진에서 인터뷰이의 이름을 검색하고 몇 가지 소소한 정보들을 알고 가게 마련이다. ‘안정인’을 검색했더니 그의 얘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조용히 검색창을 닫으며, 몇 년 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안정인’이란 이름을 다시 한 번 적어봤다. 안.정.인. 그의 첫 번째 기사를 쓰게 된 스스로를 뿌듯해하며 말이다.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것, 그리고 웃는 것을 하나로 묶어내는 그의 삶의 언어는 그래서 이 겨울 더욱 포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안드로이드의 Favorite things

태블릿(Tablet)
일년 전 갑자기 그림을 그리면서 꺼낸 태블릿. 이제는 그의 손이나 발처럼 하루 종일 그와 붙어있는 존재가 됐다.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빼곤 그림을 그리는 그이기에, 타블렛은 이제 그냥 한 몸이 됐다. 불과 1년 정도 가열차게 썼을 뿐인데, 그의 태블릿은 적당한 손때와 수십만 번의 스침으로 빈티지한 느낌까지 풍겼다.








고양이 로또(Lotto)
코리안 숏헤어 종의 ‘로또’는 그림 그리다가 진행의 한계가 오거나 지쳐 자버릴 때 시끄럽게 울고 괴롭히며 닥달하는, 안드로이드 감시자이자 알람 같은 존재다. 재밌는 건, 아티스트의 고양이답게 노마드 기질이 있어 아침에 일어나보면 외출하고 없을 때가 많단다. 그리고 귀가할 때는 종종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고.




안드로이드(안정인)

그라폴리오 안드로이드 페이지_ http://www.grafolio.net/andrawid
홈페이지_ www.andrawid.com
이메일_ andrawid@gmail.com

- 인천출생
- 세일고등학교 (인천)
-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구 :시각멀티미디어디자인)
- 건국대학교 중앙영화동아리 '햇살'
- 2008. 삼성 DFA(Digital fine art)대회 본선....










안드로이드 갤러리



Benicio Del Toro (Painter X)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 중에 한 명,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듯한 연기가 일품.




Camouflage (Illustrator CS3)
동물사진들을 보다가 뭔가 색다른 표현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그려본 캐릭터.




John McClane want to rest on Christmas (Photoshop CS3)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고생을 죽도록 하는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심경을 표현했다고 해야하나......




Joker was blindside (Photoshop CS3)
영화속의 전형적인 선악의 대결구도를 좀 귀엽고 재미있게 표현해봤다.




The Bounty Hunter (Painter X)
카우보이하면 떠오르는 고독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좀 우습게 표현.



Rebirth (Painter X)
굴레에서 벗어나는,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한 여인...... 끈적이는 건 싫다.




Cesc Fabregas (Painter Xl)
다른 축구 캐릭터들과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선수 중에 하나이기에 안 그릴수가 없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안드로이드 일문일답

1. 존경하는 디자이너와 이유
‘리들리 스콧’이나 ‘데이빗 핀처’를 꼽고 싶다. 새로운 영상적 실험과 스타일로 SF와 스릴러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낸 선구자적 감독이기 때문이다. 표현 수단이 다를 뿐이지 그들도 결국 (영상)디자이너 아니겠는가. 그리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을 지닌 일러스트레이터 ‘잠산’의 그림도 좋아한다.

2. 작업할 때 많이 듣는 음악
과거 영상 작업할 때에는 주로 'kanno yoko'의 ost 음박 작업물(카우보이 비밥)들으며 도움을 많이 얻었다. 워낙 다양한 장르의 좋은 음악이 몇 개의 앨범에 꾹꾹 눌러담겨 있어 좋아하는 앨범들이다. 요즘은 'scott mathew', 'freetempo', 'fantastic plastic machine' 의 음악을 많이 듣는다. 'freetempo'의 올해 나온 앨범 'Life'도 적극 추천한다.

3. 즐겨찾기
http://www.computerarts.co.uk/
월간지 ‘Computer Arts’를 즐겨본다. 그래픽디자인 관련 정보나 일러스트 시 도움될 만한 튜토리얼을 참고할 수 있어 즐겨찾는다.

http://www.jamendo.com/
다양한 음악을 찾아듣는 걸 좋아하다보니 알게 된 사이트, 세계 각지에 숨어있는 좋은 음악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다운로드가 가능한 공개 음원들을 제공한다.

http://grafolio.net/
설명이 필요없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돼 주목하고 있는 곳.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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