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규태의 아틀리에
가장 낮은 곳에 내미는 작은 위안

“멋있게 말고, 소박하게 써 주세요”. 기사 톤에 대한 그의 의향을 물었을 때, 그가 바란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느릿느릿한 그의 안단테적 말투와 어울리는 요구였다.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그이지만, 거친 마감재와 단출한 작업대로 각인된 작업실 역시 소박한 그와 닮았다. 애니메이션으로 세상에 작은 불을 밝히는 작가 이규태의 방으로 가보자.


청수장 높은 꼭대기를 올라 그의 작업실에 발을 들였을 때, 원목과 흰색 벽이 주는 깔끔함은 어느 젊은 건축가의 집에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새하얀 벽에 반전이라도 주려는 듯 여느 주택의 두 배 이상 높은 지붕은 울퉁불퉁한 시멘트 벽돌과 나무판자로 마감돼 있었다. 얼기설기한 벽돌 사이 시멘트로 채운 줄눈은 줄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벽돌처럼 거칠었다. 그리고 그 곳에 7명의 젊은 아티스트가 살고 있었다.
“현재 애니메이션 작업하는 친구들 외에 2명의 회화작가가 같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 같이 힘을 합해 멋진 작품을 만들자고 약속했죠.”
겨울의 초입인지라 이따금 추위가 영감을 얼어붙게 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뿜어내는 열정과 서로의 체온이 있기에 뼛속까지 시리진 않단다.

여럿이 나눠쓰는 공간이지만 그의 책상은 두 개나 된다. 그러나 그의 책상을 보고는 살짝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정말 깔끔했다. 아니 깔끔이 아니라 깨끗했다.
“저는 시간을 정해놓고 책상에 붙어앉아 그림을 그리지는 않습니다. 제 모든 시간과 제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이 제 작업공간이죠.”
특별한 소재자체를 찾기 위해 고민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낙서하고 스케치 한 것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연결된다. 때문에 그의 작업실은 따로 없다. 굳이 책상이 아니어도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달랑 종이 한 장과 볼펜 한 자루만 들고 가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공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끄적끄적 스케치에 색을 입혀나가기도 한단다.
어쩌면 매일같이 꾸준한 낙서로 일상을 채워가는 것 자체가 그의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도 그를 만날 때는 언제나 손때 묻은 종이뭉치와 크로키 북이 가방에 가득하다. 인터뷰 중에도 잠깐의 짬이 나면 낙서를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낙서 중독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그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작품을 더욱 이해하게 됐다.

그가 애니메이션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그 전에는 서양화를 그리다 당시 학교선배인 김성민(PJ.Kim) 작가를 만나면서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만화나 일러스트, 애니메이션은 다르지 않아요. 한 장의 그림이면 일러스트고, 두 장 이상이 모여 어떤 플롯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면 만화, 그리고 그것이 움직이면 애니메이션이죠. 즉, 이 세 가지를 유동적으로 작업하며 굳이 구분짓지 않습니다.”
‘작가 이규태’ 하면 애니메이션 <돌아보다>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가 직접 감독한 애니메이션은 6편 정도.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인 <돌아보다>는 그에게 가장 의미있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가장 아끼는 작품이기도 하다.
“<돌아보다>는 졸업작품입니다. 제작에 1년 정도 걸렸는데요, 기존에 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서 한 작품입니다. 저를 많이 성장시킨 작품이죠.”



그의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일상에서 쉽게 넘겨버릴 수 있는 감정들을 섬세하고 심도 있게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감정들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평소 흘려버리고 무시해 버리는 작은 감정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그의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 모두 깊은 감정을 가볍게 읽어 내려가는 부드러운 시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말수 적은 작가가 그림이란 장르를 통해 자기 안에 있는 섬세하고 개인적인 감정들을 내놓고 세상과 소통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항상 따뜻함과 외롭고 차가운 감정이 공존하며 치우침 없이 밸런스를 이룬다. 이규태 작가의 작품이 묘한 여운을 남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이번에는 어떤 일상을 그리고 있을지, 어떤 감정에 대해 고민하고 작품으로 세상에 내놓을지 벌써 궁금해진다.

“이미지를 통해 생각을 표현하는 건 무척 흥미로운 일이죠.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맞춰가듯이 작은 그림 하나하나가 작은 소리를 내고 이것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 작품에 동화해도 좋고, 감정이입을 해도 좋아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치유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지금 제가 가진 능력은 작지만, 언젠가는 초능력이 될 수도 있잖아요. 제가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제 꿈입니다.”
그의 애니메이션을 담은 첫 번째 작품집이 그라폴리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혼자 있는 날엔 어쩔 수 없이 외로워지는 게 사람이다. 이럴 때, 그의 작은 책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그가 건네는 위안의 손을 맞잡으면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이규태의 Favorite things


볼펜(Ballpen)

그가 가장 아끼는 질료는 볼펜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작업실에서 자리를 잡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면서 틈틈이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연필은 종이에 그려서 오래 들고다니다 보면 비벼지고 번져서 그림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볼펜은 톤 조절도 되고, 깔끔하다는 장점이 있어서, 볼펜을 주로 사용한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유난히 단출한 그의 책상에는 덩그러니 볼펜 한 자루뿐이었다.





요요(YoYo)

이규태 작가의 친구들은 이따금 그에게 요요를 선물받는다. 실제로 요요 묘기도 잘하는 그다. 요요에 원래 들어있는 그림을 빼고 하나하나 그려서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실제로 요요는 골목 문구점에서 파는 1,000원짜리 요요다.
“그런데 제가 그림을 그리니 천 원짜리로 안 보이죠? 한 1,200원짜리 요요로 보이지 않나요?”(웃음)






이규태 (1981. 8. 23 ~ )
그라폴리오 이규태 페이지_ http://www.grafolio.net/artluck
홈페이지_ www.kokooma.com
트위터_ @koko_oma

1999  계원예술고등학교 졸업
2008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주요작품
2004  점심 (그림책)
2004  내가 사랑하는 그녀 (그림책)
2005  이웃의 그녀 (그림책)
2005  Travel (애니메이션)
2006  우울한 울퉁불퉁 언덕 (애니메이션)
2008  돌아보다 (애니메이션)
2009  두근거림의이유(애니메이션)
2009  런런런(애니메이션/공동감독:최영훈)
2010  몸이큰아이(그림책)
2010  새이야기(그림책)
2010  서로가 (그림책)

전시 및 초청상영
2005  아시아 그라프 초청 (일본/Travel)
2006  아시아 그라프 초청 (일본/우울한 울퉁불퉁 언덕)
2008  리코더 전 (BMH 갤러리/그룹)
2008  중동 국제 영화제 초청 (아랍에미리트/돌아보다)
2008  SBS애니갤러리 (돌아보다)
2008  부산디지털 컨텐츠 유니버시아드 영화제 (돌아보다)
2008  미장센 영화제 (돌아보다)
2008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star of student) (일본/돌아보다)
2008  아니마문디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브라질/돌아보다)
2008  애니마드리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스페인/돌아보다)
2008  테헤란 국제 단편 영화제 (이란/돌아보다)
2009  헛소동 전 (갤러리 카페 기획 초대전)

수상 및 제작지원
2005  동아/LG 국제만화 페스티벌 "신인감독상" (Travel)
2007  한국 콘텐츠 진흥원 "단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 (돌아보다)
2008  대학애니최강전 "특별상" (돌아보다)
2008  KT컨텐츠공모전 "우수상" (돌아보다)
2008  일본 디지털 크리에이터 콤포티션 "KOCCA원장상" (돌아보다)
2008  피사프 국제 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특별상" (돌아보다)
2008  한국 콘텐츠 진흥원 "단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 (두근거림의 이유)
2010  중국 골든 드레곤 어워드 "Best Overseas Comic" (몸이큰아이)


이규태 갤러리



딸기 아이스크림 / Strawberry ice cream
2010. ball pen, water color, color pencil. on paper. 27 X 39
드디어 찾았다 딸기 아이스크림!




너와 / With you
2010. ball pen, ink, water color. on paper. 22 X 16
너와 나의 시간은...




돌아보다 / Look around
2008. Animation. 1min 30sec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 창을 가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




몸이 큰 아이 / The big boy
2010. Picture book. 24p
그들과 다른 어느 아이에 대한 이야기.




새이야기 / The bird story
2010. Picture book. 30p
특별한 곳으로 가고 싶은 어느 새에 대한 이야기.




서로가 / Each other
2010. Picture book. 34p
서로가 범하는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


이규태 작가 일문일답

1. 화가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이신데요, 그럼 평소에 영화를 많이 보나요? 그림을 많이 보나요?
영화도 좋아하지만 그림을 훨씬 많이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 사이트나 책을 일부러 뒤져가면서 보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주변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그림을 봅니다. 예컨대 지금처럼 차를 마시다 머그컵의 그림이 좋으면 담아뒀다 활용하는 식이죠. 가능하면 모든 사물에 대해 눈을 열어두려 합니다.

2. 지금 실험적인 작품들을 주로 하고 계시는데요, 수익성을 생각한다면 장편 애니메이션에도 욕심이 날 것 같은데….
단편만 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지금 장편을 제작할 여건이 안됩니다. 이건 비단 제작비의 문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깜냥이 안 됩니다. 그러나 여기 같이 있는 친구들과 힘을 합해 좀 더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3. <돌아보다>를 비롯, 대부분의 작품들에 외로움, 소외, 후회, 상처 등을 다룬 내용이 많은데요, 경험에서 온 것인가요?
그랬나요? 듣고 보니 제가 그런 얘기를 많이 다뤘군요. 그러나 어떤 경험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에요. 사실 그런 얘기가 생소한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가장 가깝게 일어나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면서도 가장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단순하고 일상적인 주제보다 공감이나 위안을 줄 수 있는 얘기들을 하고 싶었어요.

4. 서양화를 하다가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하셨는데요, 어떤 매력에 빠지신건가요?
그림이나 그림책은 어떻게 완성이 되는지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그러나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저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쉽게 상상이 안 되죠. 굉장히 광범위한 예술이고, 그만큼 해도해도 푹 빠지게 되는 장점이 있어요. 즉, 애니메이션은 제가 쉽게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자 도전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어요. 애니메이션의 영역이 꾸준히 확대되어 가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잖아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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